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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and 글 이야기

[결혼이야기] 서툰 데이트하기

by 자부리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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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올해 10년이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내와 둘만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손에 꼽힌다. 특별한 날이라도 집에서 기념일을 맞이 해야 했던 날들이 많았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결혼기념일에 장모님 집에 아이들을 잠깐 맡기고 3~4시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집에서는 해먹기 힘든 메뉴인 조개구이집을 가는 게 유일한 데이트였다. 그리고 소주를 취기가 느낄 정도로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술 마시는데 재미가 들려 주구장창 술집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다. 그래서 데이트코스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오늘은 곰장어 내일은 전집 그리고 다음날은 탕집..... 포장마차와 술집들이 즐비한 장소에서 1차 2차 3차 노래방.... 매일 비슷했지만 매일이 즐거운 데이트였다. 술안주에 따라 술을 결정하고 만나는 날 특별한 일에 따라 장소를 정했던 감성 넘치는 20대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데이트코스였던 거 같다.

 

쉬는 주말에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마시기 일쑤였다.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던 상태라 늘 우리 집은 친구의 아지트가 되기 일쑤였다. 거기다 음식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안주맛집으로 자리 잡아 주말이면 친구들로 북적북적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등교를 할 나이가 돼서야 평일 아내와 둘만 데이트를 즐길 때가 있다. 하지만 하교 때문에 술을 마실수가 없으니 연애시절 때도 잘하지 않은 데이트 코스를 짜야만 했다. 

데이트코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점심은 뭐 먹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오늘 우리 뭐할까???

 

술집 데이트를 하고 싶지만 아이들 하원시간에 맞추어 집에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여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집으로 돌아가면 딱 맞는 일정이었다.

 

밥집은 보건대학교 근처 백두산 백반집으로 정하고 출발했다.  영화관이랑 가까운 곳이라 선택이 더 빨랐다.

대구보건대학교 앞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오삼두루치기 2인상을 주문했는데 반찬 4가지와 깻잎쌈,  된장찌개도 함께 나왔다. 

한쌈 먹는 순간 오늘도 선택을 잘한 내가 고마웠다.^^ 사실 한 끼 한 끼가 세월이 갈수록 소중하다는 걸 느껴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밥 먹은 후 영화관에서 먹을 주전부리를 사고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헌혈을 하고 받은 티켓으로 '싱글인서울'을 예매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아니면 이제  영화관 데이트코스는 사라져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더 이상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는 시대가 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관에는 아내와 나 둘 뿐이었다.

이벤트가 아니었는데 마치 통대관을 한 것처럼 돼버렸다. 몰래 반지라도 숨겨왔으면 10주년 프러포즈를 다시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함께보다는 싱글일 때 가장 나를 잘 볼 수 있고 싱글일 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 생각하는 주인공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같다. 그리고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책임지기보다 스스로 삶의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느낀 생각은 남녀가 결혼 후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서로에게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두 번은 살 수 없는 삶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결혼생활의 방법을 찾은 거 같아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오늘은 조금 서툰 데이트였지만 내일이 달라질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아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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