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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and 글 이야기

소란한 보통날의 이야기

by 자부리 2023.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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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아내의 독서수업이 있는 날이다. 

책거리(책 한권 끝나는 날)가 있는 날이라  조금 늦게 온다며 막내의 하원을 부탁했다.

 

둘째는 먼저 하원해서 요리교실에서 만든 스파게티를 자랑했다. 아낌없이 듬뿍 칭찬을 해주었는데 칭찬이 무색하게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실로 막강하다. 사실 아내라는 존재는 더 막강하다.^^

사진수업에서 배운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즐겁게 찍고 맛있게 먹으면서 내가 엄마의 빈자리를 잠시 채워줬다. 

 

아침에 울면서 유치원을 등원했던 막내를 하원하러 가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하원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필요 없었다.

 

사마귀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마귀와 개미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5분 정도 걸리는 길이였지만 사마귀와 개미친구들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왔다. 

 

막내가 만족했는지 갑자기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옆집 형아랑 놀고 싶은게 분명했다. 그렇게 막내는 옆집으로 가고 나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 설거지를 했다. 잠시 뒤 아내가 한아름 물건을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사연이 담긴 포도와 쿠키이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오늘 수업 중 있었던 이야기도 함께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치킨을 부르고 9월 1일부터 감옥에 간 소주를 풀어주었다.(금주)

 

그래 결심했어
내일부터 ㅋㅋ

첫째와 둘째는  '어느 치킨집을 가지? 감자튀김은 먹을까 말까? ' 이야기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문제는 막내였다.

외출한다고 하면 집에 있고 싶다며 때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위엄을 보여 강제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아이가 왜 그런지 알고 싶어 막내와 집에 남아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시작과 끝을 모를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졌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질문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시 다스리고 아이의 부탁을 최대한 들어주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집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막내를 설득하지 못한 채 원하는 저녁을 만들어 식탁에 차려 줬다.

마지막 인내심으로 화를 움켜잡고 있는데 지금 배고프지 않으니 보온도시락에 담아 달라고 했다.

 

'아~~~!!!!'

 

한 번 더 참고 보온도시락을 꺼내려는는데 갑자기 그냥 두고 치킨을 먹고 일찍 오라 했다.

전화 거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혼자 나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무 말 없이 뛰어와 안기며 막내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긴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밖에 나갈 채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면서 한 시간 동안 집에서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먼저 출발한 아내와 두 아이가 선 주문을 해 놓은 장소까지는 10분도 안 결리는 거리였다.

그 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사고 싶은 장난감에 대해 하나 둘 알게 되었다.

 

'화 풀어 줬으니 그중에 하나는 사줄 거지 아빠?'

환정이 들리기 시작했다.

 

알통치킨포차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치킨과 떡볶이를 시켜주고 아내와 난 즐겨 먹는 똥집볶음과 음료를 주문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30분이 걸렸다. 나의 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는데 회복탄력성 높은 막내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다시 흥을 끌어올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쇼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님께서 서비스를 주셨다. 바삭하게 튀겨 나온 따뜻한 감자튀김 앞에서 더 이상의 대화는 사치였다.

사장님께서 주신 감자튀김(감사합니다.^^)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일어나 강둔치를 산책하기 위해 이동했다.

아뿔싸~~ 근처 마트 주차장에 들어선 프리마켓을 막내가 보고 말았다.

 

장난감을 보며 사고 싶었던 것들이 이곳이 있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산책을 하자고 이야기를 해도,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해도 듣지를 않았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이곳을 빠져나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상 걸릴 것 같다는 직감을 했다. 

앞서간 아내를 따라가 카드를 받아 되돌아왔다. 

 

 

그 사이 사고 싶은 장난감이 달라져 있었다. 작은 장난감을 사고 싶다던 아이는 큰 장난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힘을 소진하기 싫어 사주었다.

 

 

이정재가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 앞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처럼 간담이 서늘했졌다. 엄마를 따라 산책을 가던 첫째와 둘째가 눈에 힘을 주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력소모와 감정소모로 인해 결국 내 지갑만 얇아지고 외식으로 차오르던 흥은 사라졌다.

집에 도착하니 내가 차린 막내의 밥상이 식탁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막내를 위한 밥상이 결국 나를 위해 내가 차린 2차 술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 띠에 갇힌 일상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가끔 웃고 또 살아갈 힘을 나게 해준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아빠

내일도 또 나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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